김광석 나이 프로필 키 노래 결혼 사망 원인 과거 젊은시절 리즈 부인
김광석 가수 프로필
출생 : 1964년 1월 22일
고향 : 경상북도 대구시 중구 대봉동 번개전업사
사망 :
1996년 1월 6일 (향년 31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불완전 의사
거주지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독막로7길 39 원음빌딩 403호
장지 :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재산면 청량산
국적 : 대한민국
직업 : 싱어송라이터
본관 : 경주 김씨
데뷔 : 1984년 5월 31일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본적 :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 2264 힐스테이트 범어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354-10[사망진단서]
신체 : 164cm, 58kg
학력 :
서울창신국민학교 (전학)
대구동도국민학교 (전학)
서울창신국민학교 (졸업)
경희중학교 (졸업)
대광고등학교 (졸업)
명지대학교 (경영학 82 / 학사)
가족관계 :
아버지 김수영(? ~ 2004)
어머니 이달지(? ~ 2016)
아내 서해순(1965년 9월 14일)
외동딸 김서연(1991년 5월 30일 ~ 2007년 12월 23일 / 향년 16세)
큰누나 김광나
작은누나 김광득
큰형 김광동(? ~ 1980년 10월 3일)
둘째형 김광복
병역 : 대한민국 육군 이병 소집해제 (방위병)
종교 : 기독교 (개신교) → 무종교 (법명: 원음)
김광석 가수가 된 계기
김광석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창신동[10]으로 이주하여 서울창신초등학교, 경희중학교, 대광고등학교를 나왔다. 중학교 시절 현악부 활동을 하며 선배들로부터 바이올린을 다루고 악보를 보는 법을 배웠으며, 대광고등학교 시절 합창부로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 1982년에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 12월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85년 1월 입대하였고, 6개월 단기사병(방위병)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 큰형(김광동)이 1980년 10월에 군복무 중 사망했기 때문이고, 관련해서 김광석은 인생이야기 음반에서 이등병의 편지 부르기 전에 이야기한다. 제대 후 복학해 다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하여 1, 2회 정기공연에 참여한다. 1987년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을 결성해 동물원 1집과 2집을 녹음하였다.
김광석 가수 데뷔
김광석은 1989년 10월 솔로로 데뷔하여 첫 음반을 내놓았으며, 이후 1991년에 2집, 1992년에 3집을 발표하였고, 1994년에 마지막 정규 음반인 4집을 발표하였다. 정규 음반 외에 리메이크 앨범인 다시부르기 1집과 2집을 1993년과 1995년에 각각 발표하였다. 1991년부터 꾸준히 학전 등의 소극장을 중심으로 공연하였으며, 1995년 6월 29일 KMTV 슈퍼콘서트를 찍었다.
그리고 1995년 8월 11일에는 소극장에서 1000회 공연의 기록을 세웠다. 1996년 1월 5일 박상원이 진행하던 HBS '겨울나기'에 출연을 하였는데 여기에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을 부른 것이 마지막 공연과 모습이 되었다.
워낙 많은 공연을 했던지라 '또 공연을 하느냐'는 의미로 '또 해'라는 별명이 생겨났을 정도로 매해마다 음반 발표와 소극장 라이브 공연을 병행하며 관객과의 직접적인 교감에 전력을 쏟은 김광석은 1995년 8월 11일 마침내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1000회 기념 공연이라는 금자탑을 이뤘고 기념으로 2개월 간 전국 투어를 돌았다. 20대 여성층은 물론 30대 남성 직장인, 60대 노부부들까지 몰려드는 김광석의 공연은 대학로를 중심으로 한 소극장 공연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김광석 사망 원인
김광석은 1996년 1월 6일 새벽 4시 30분 마포구 원음빌딩 자택 403호에서 전깃줄과 밧줄로 목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 시신을 화장한 후 사리 9과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딸 김서연은 1991년에 태어났고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2007년 사망한 사실이 2017년 9월 뒤늦게 밝혀졌다.
부인 서해순은 살인이 아닌 자살이라고 주장을 했지만 가족 및 지인들은 의혹을 제기했다. 세간에 알려진 김광석의 자살설에 대해 가족들은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 라고 일축했다. 김광석의 누나들은 "광석이는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만큼 불효는 없다'라고 항상 말했다.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다는 모습을 보였다.
김광석이 죽었을 때 부인 서해순은 3가지 진술을 했다. 근데 다 다르다. 1.티비를 보다가 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에 줄을 매고 죽어 있었다. 2.티비를 보다가 김광석이 너무 추울까봐 이불을 가져다 주러 갔는데 죽어 있었다. 3.잠을 자다가 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에 줄을 매고 죽어 있었다. 고 말했다.
총 3가지 주요 의문점이 있었는데 1. 김광석이 목을 스스로 맸냐는 것, 2.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점, 3. 정말로 우울증이 있었냐는 것이다. 1번 의문의 근거는 목을 매달 전깃줄을 묶기 위해 쓰였어야 했을 의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목을 매달 위치조차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살을 할만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또 지인은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것처럼 해서 발견됐다. 줄이 늘어나야 사람이 서있을거다. 근데 전깃줄이 늘어나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고 김광석 자택은 현재 내부 공사가 이루어져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2번 의문은 고 김광석씨는 메모광으로 유명하였는데, 아무런 유서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 김광석 첫째 자형은 "(김광석은) 메모가 아주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습관이 있다. 틀림없이 유서가 있을 것이다"라고 털어놨다. 3번째 이유가 된 고 김광석씨의 부인 서해순씨가 주장한 우울증 역시 지인 말에 따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음악 동호회 지인은 "분명 말씀 드릴 수 있다. 김광석 씨가 우울증이 있었으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다"며 "적어도 1년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라이브 1,000회 공연할 때 매일 봤었고 그동안 병원 가는걸 본적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김광석 가창력 평가
김광석에 관하여 설명할 때, 흔히 '진정성이 있는', '마음을 울리는', '우리들의 감정을 건드려주는 목소리' 등등의 말들. '전위적인 실험정신을 지닌', '뛰어난 기교를 지닌' 등의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그의 노래를 들은 혹자는 김광석을 가리켜서 가객, 노래하는 시인, 노래하는 철학자라고 부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김광석이 광석이 형, 오빠, 아저씨라는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남아있는 가수라고도 말한다.
김광석의 음악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유는 그의 목소리, 더 정확히 말하면 음색과 거기에 실린 짙은 감정 때문이다. 특히 김광석의 바이브레이션은 바이브레이션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다. 기교를 위해서 목소리를 떠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울음을 참듯이 목소리가 떨리기 때문이다. 김광석의 그 창법은 따라한다고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라서 완벽한 모창은 불가능하다는 게 정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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